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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 Taiy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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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자료] 일본의 한국 지역차별 가능성
Yi Taiyub at 2018-02-17 02:13
URL http://kallery.net/s.php?i=850

일본서기를 읽으면 신라에 대한 일본의 혐오가 강하게 느껴진다.
신라에 대한 혐오는 심지어 설화에서도 나타난다.

소잔오존의 하는 짓이 매우 버릇이 없었으므로 여러 신들이 그 벌로 많은 재물을 바치게 하고 마침내 쫓아 내었다. 이 때 소잔오존은 그의 아들 오십맹신을 데리고 신라국에 내려가 증시무리란 곳에 살았다. 말하기를 “이 땅에서 나는 살고 싶지 않다”하고는 찰흙으로 배를 만들어 그것을 타고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 출운국 파천 가에 있는 조상봉에 도착했다.
-- 소잔오존은 일본의 건국설화에 나오는 신이다. 거친 성격으로 악역을 많이 맡았다.

소잔오존이 “한향(韓鄕)의 섬에는 금은이 있다. 만약 내 아들이 다스리는 나라에 배가 없으면 좋지 않다”하고는 수염을 뽑아 뿌리니 삼나무가 되었다. 또 가슴의 털을 뽑아서 뿌리니 이것이 전나무가 되었고 꽁무니의 털은 비자나무가 되었으며 눈썹의 털은 녹나무가 되었다.
-- 韓鄕은 한국을 말한다. 한국에는 금은이 많은데 그것을 빼앗으려면 배가 있어야 하므로 배를 많이 만들 수 있도록 나무를 많이 심는다는 이야기다. 한국에는 금은이 많고 그것을 빼앗으면 부를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은 일본서기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California Gold Rush처럼 작용하여 한국 침략에 동참하도록 일본인들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었다.

신라왕이 오례사벌과 모마리질지, 부라모지 등을 보내어 조공하였는데 전에 볼모로 와 있던 미질허지벌한을 돌아가게 하려는 생각이 있었다. 이에 허지벌한을 꾀어 “사신 오례사벌과 모마리질지 등이 나에게 ‘우리 왕이 제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는 것에 연루시켜 처자를 모두 종으로 삼았다’고 말하였습니다. 바라건대 잠시 본토에 돌아가서 그 사정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라 속이게 하였다. 황태후가 곧 들어 주었다. 그리하여 갈성습진언을 딸려 보냈다. 함께 대마에 도착하여 서해의 수문에 머물렀다. 이 때 신라의 사신 모마리질지 등이 몰래 배와 뱃사공을 나누어 미질한기를 태우고 신라로 도망가게 하였다. 그리고 풀을 묶어 사람 모습을 만들어 미질허지의 자리에 두고 거짓으로 병든 사람인 체하고 습진언에게 “미질허지가 갑자기 병이 들어서 죽으려고 한다”고 하였다. 습진언이 사람을 시켜 병자를 돌보게 했는데, 속인 것을 알고 신라 사신 세 사람을 붙잡아서 우리 속에 집어넣고 불태워 죽였다.
-- 모마리질지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박제상인데 모말이라고도 하였다. 미질허지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미사흔이다.

신라왕 우류조부리지간을 사로잡아 해변에 데리고 가서 왕의 무릎뼈를 빼고 돌 위에서 기게 하였다. 조금 있다가 목을 베어 모래 속에 묻었다. 그리고 한 사람을 머물게 하여 신라의 재상으로 삼고 돌아왔다. 그 후 신라왕의 처가 남편의 주검을 묻은 곳을 몰라서 혼자 재상을 꾀일 생각을 하였다. 곧 재상을 유인하여 “당신이 왕의 주검을 묻은 곳을 가르쳐 준다면 반드시 후하게 보답하고 또 제가 당신의 아내가 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재상이 속이는 말을 믿고 주검을 묻은 곳을 몰래 알려 주었다. 그러자 왕의 처가 나라 사람들과 함께 의논하여 재상을 죽이고 또 왕의 주검을 파내어 다른 곳에 장사지냈다. 이 때 재상의 주검을 왕묘의 밑에 묻고 왕의 널을 들어 그 위에 얹고 “높고 낮음의 순서는 진실로 이와 같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를 천황이 듣고 다시 매우 화가 나 크게 군대를 일으켜 신라를 멸망시키려고 하였다. 그래서 군선이 바다에 가득차서 나아가니, 이 때 신라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곧 서로 모여 함께 의논하여 왕의 처를 죽이고 사죄하였다.
-- 우류조부리지간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우로다. 삼국사기에는 우로가 불에 태워져 죽었다고 한다.

562 조를 내려 “신라는 서쪽의 오랑캐로 작고 보잘것 없는 나라이다. 하늘을 거스리고 예의가 없어 우리의 두터운 은혜를 저버리고 나의 관가를 깨뜨렸으며 나의 백성에게 해독을 끼치고 나의 군현을 멸망시켰다. ... 쓸개를 마시고 창자를 꺼내어 함께 간악한 역적을 죽여 천지의 큰 아픔을 씻고 임금과 아비의 원수를 갚지 못하면 죽어서도 신하와 아들의 도리를 이루지 못하는 한이 있다."
-- 신라가 임나를 병합한 데 대한 왜왕의 반응이다. 이때 왜왕은 군대를 보내어 신라를 침공하게 하였으나 패하고 만다. 원래 신라와 왜(倭)는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이 사건으로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571-03 판전이자랑군을 신라에 사신으로 보내어 임나를 멸망시킨 사유를 물었다.

571-04 천황이 병환으로 자리에 누웠다. 황태자는 밖에 나가 없었으므로 역마로 불러들였다. 누워 있는 내전에 불려 들어가니 그의 손을 잡고 명하기를 “내 병이 심하니 이후의 일을 너에게 맡긴다. 너는 반드시 신라를 쳐서 임나를 세워 봉하라. 다시 서로 화합하여 옛날과 같이 된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하였다. 

663 일본의 어지러운 대오와 중군의 군졸들을 이끌고 나아가 굳게 진치고 있는 당(唐)의 군대를 쳤다. 당(唐)이 바로 좌우에서 배를 협공하여 에워싸고 싸우니 잠깐 사이에 관군이 계속 패하여,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이 많고 배의 앞뒤를 돌릴 수 없었다. 박시전래진이 하늘을 우러러 보며 맹세하고 분하여 이를 갈며 성을 내고 수십 인을 죽이고 전사했다. 이 때 백제왕 풍장이 여러 사람과 배를 타고 고려로 도망했다.
-- 백제가 당나라와 신라의 연합군에 의해 붕괴되자 왜(倭)는 일본에 와 있던 백제 왕자 풍을 귀국시켜 백제왕으로 세우고 3년간 준비한 끝에 마침내 대규모 원정군을 파견하였다. 그러나 이 원정군은 위의 기록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백강구 전투에서 당나라에 패하고 만다. 이로써 왜(倭)는 한국과 단절된 역사의 길을 가게 된다.
1890년에 星野恒(ほしの ひさし)은 이 사건을 임진왜란의 원인이라 주장했다. 신라와 왜(倭)는 원래 같은 뿌리에서 나왔는데 신라가 왜(倭)를 배신하고 당나라를 끌어들여 백제를 멸망시켰기 때문에 豊臣秀吉(とよとみ ひでよし)이 전쟁을 일으켜 복수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주장이지만 일본 내에서 일본의 한국 침공을 정당화하거나 한국 내에서 한국인들 사이를 갈라놓는 데는 일조했을 것이다.



일본서기에는 왜(倭)가 걸핏하면 신라를 쳤다고 되어 있다. 삼국사기에도 신라는 왜(倭)의 침략을 무수히 당했다고 되어 있다. 반면 두 사서를 통틀어 백제와 왜(倭)가 싸웠다는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또 백제는 중국 문화를 왜(倭)에 전수해 주고 인질도 꾸준히 보냈다고 되어 있다. 왜(倭)는 외교적으로 백제를 지지하는 동시에 군사 지원도 백제가 망할 때까지 아낌없이 해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백제와 신라의 상반된 일본과의 관계는 옛 백제와 신라 지역의 한국인들에게 일본에 대해 호감과 혐오라는 상반된 정서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동시에 두 지역의 한국인 서로 간에는 반감을 증폭시킬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옛 백제와 신라 지역이란 백제가 존재할 때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훗날 신라가 한국을 통일했으니 지금 기준으로는 모두 신라 지역이다.) 
식민통치를 보다 쉽게 하기 위해 한국인들을 갈라놓을 필요가 있는 일본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효과적인 소재는 없지 않을까?
한편, 백제와 신라의 상반된 일본과의 관계는 일본인들에게도 백제와 신라에 대해 호감과 혐오라는 상반된 정서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정서는 식민통치에 반영되어 차별 정책을 낳았을 가능성이 있다.
일본군 위안부의 출신지는 경상도가 많고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독립유공자의 수도 경상도가 많다. 재일교포의 출신지도 경상도가 많고 만주로 이주한 조선족들도 경상도 출신이 많다.
옛 신라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이 일조시대에 매우 어려웠고 저항도 심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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