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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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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
[역사/문화 자료] 임나일본부설(X) 임나경영설(O)
이태엽 at 2011-08-02 18:21
URL http://kallery.net/s.php?i=441



일본서기에는 464년 고려의 위협을 받은 신라가 임나일본부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왕이 임나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고려왕이 우리나라를 정벌합니다. 지금의 시기는 깃대에 묶어놓은 술과 같고 나라의 위태로움은 계란을 쌓아놓은 것보다 더하여 나라 운명의 길고 짧음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일본부 행군원수(日本府 行軍元帥)에게 구원을 청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이후에도 '일본부'란 말은 일본서기에 여러 번 등장한다.
그런데 이 일본부란 용어는 왜(倭)의 임나경영설을 부정하는 근거로 자주 언급된다.
일본이라는 말은 이 당시에는 없었던 말이기 때문에 이 말이 들어가 있는 일본서기의 관련 기록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삼국사기에는 왜(倭)가 670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일본(日本)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되어 있다.

0670-12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倭國更号日夲 自言近日所出以爲名
왜국이 이름을 바꾸어 일본이라 하였다. 스스로 말하기를 “해뜨는 곳에 가깝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붙였다.”고 하였다.

이것은 중국의 기록을 옮긴 것이다.

0670 구당서(舊唐書 945)
日本國者,倭國之別種也。以其國在日邊,故以日本爲名。或曰:倭國自惡其名不雅,改爲日本。

0670 신당서(新唐書 1060)
咸亨元年,遣使賀平高麗。後稍習夏音,惡倭名,更號日本

그런데 1281년에 편찬된 삼국유사에는 황룡사 9층탑의 유래를 설명하는 내용이 있는데 여기에 일본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

1281 삼국유사(三國遺事) 卷 第一
해동안홍기에 이르기를 “9한이란 것은 1. 일본, 2. 중화, 3. 오월, 4. 탁라, 5. 응유, 6. 말갈, 7. 단국, 8. 여진, 9. 예맥이다.”라고 하였다.
九韓者 一日夲 二中華 三吳越 四乇羅 五鷹逰 六靺鞨 七丹國 八女真 九穢貊

1281 삼국유사(三國遺事) 卷 第三
해동의 명현 안홍이 편찬한 동도성립기(東都成立記)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라 제27대에 여왕이 왕이 되니 도(道)는 있으나 위엄이 없어 구한이 침략하였다. 만약 용궁 남쪽 황룡사에 구층탑을 세우면 곧 이웃나라의 침입이 진압될 수 있다. 제1층은 일본, 제2층은 중화, 제3층은 오월, 제4층은 탁라, 제5층은 응유, 제6층은 말갈, 제7층은 거란, 제8층은 여적, 제9층은 예맥이다."
第一層 日本 第二層 中華 第三層 吳越 第四層 托羅 第五層 鷹逰 第六層 靺鞨 第七層 丹國 第八層 女犾 第九層 獩㹮
(여기서 중화는 북중국, 오월은 남중국, 탁라는 탐라, 응유는 백제 그리고 예맥은 고려를 말한다.)

안홍은 수나라에 유학을 갔다가 576년 또는 605년에 돌아왔고 선덕여왕은 647년에 죽었으니 동도성립기는 분명 670년 보다 훨씬 이전에 편찬되었을 것이다. 그 동도성립기에 일본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으니, 일본이라는 말는 670년 이전부터 신라에서 사용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동도성립기에는 '왜(倭)'라고 되어있었지만 삼국유사를 편찬하면서 당대에 사용되던 말인 '일본'으로 바꾸어 기록했을 가능성은 있다. 
삼국유사에는 9한의 하나인 여진을 권1에는 '여진(女眞)'이라 했다가 권3에서는 '여적(女狄)'이라 하는 등 앞뒤가 일치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삼국유사의 인용이 원문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것은 또 '왜(倭)'를 '일본(日本)'으로 편집했을 가능성도 열어준다.
대체로 일본이라는 말의 유래는 아래 기록을 들어 수(隋)나라때일 것으로 추정한다.

0607 수서(隋書 636)
607년 왜왕 다리사북호가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사신이 아뢰길 "듣자오니 바다 서쪽 보살천자께서 불법을 다시 일으키신다 하니 사신을 보내 조배드립니다. 아울러 중 수십 명이 여기 와 불법을 배우고자 합니다." 하였다. 그 국서에는 '해 뜨는 곳 천자가 해 지는 곳 천자에게 글을 보내오. 별일 없으신가?' 어쩌고 저쩌고 하였다. 황제가 글을 보고 언짢아 홍려경에게 "오랑캐가 보낸 글이 무례하구나. 다시는 이런 말이 들리지 않게 하라." 하였다.
「日出處天子至書日沒處天子無恙」

어쨋든 일본서기에 나오는 '일본'이라는 말은 562년에 멸망한 임나가 존재하던 당시에는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분명 일본서기의 신뢰성에 큰 타격을 주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것이 일본서기에 나오는 왜(倭)의 임나경영설을 모두 부정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삼국사기의 후반부는 대부분 중국의 기록을 편집한 것인데 중국 기록에서 '고려'라고 표기했던 나라를 모두 '고구려'라고 바꾸어 놓았다. 이처럼 사서를 편찬하는 단계에서 어느 정도의 개칭은 있을 수 있다.
근래 일본인 학자들도 '일본(日本)'이라는 말이 임나가 존재하던 시기에 사용되었다는 근거를 찾을 수 없어 '임나일본부'라는 용어가 학술용어로 적절하지 않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그래서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에서도 같은 결론을 내었다. 그러나 이것이 임나경영설의 폐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임나일본부'라는 용어의 폐기일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마치 일본에서도 임나경영설을 폐기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에는 언론의 왜곡이 큰 역활을 하였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일부 타당치 않다고 인정'하고 
'너무 지나친 해석이었다는 데 동의'한 것을 
'임나일본부설은 사실상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그런데도 제목은 이렇게 달아 놓았다.

한·일 역사공동위 결론… 日 "임나일본부설 근거없다"

일부(some)를 부정한 것을 전부(all)를 부정한 것처럼 느껴지게 기사를 쓴 것이다.
아래 기사가 객관적이다.
'일본 역사학계가 임나일본부라는 용어를 폐기하는 데 동의한 것이지 한반도 남부를 경영했다는 주장은 지금까지 폐기한 적이 없다.'

일본이 임나경영설을 폐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본 역사 교과서.




참고:


첨부파일
    l_2017060701000818400059061.jpg [내려받기] [보기]

[권한] 읽기:비회원, 덧글:일반회원, 쓰기:이태엽, 파일올리기:이태엽, 관리:이태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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